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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自南韓「傾向新聞」2007年12月13日 金石鐘記者(音譯)的報導**

【超宗教和平之夢!文鮮明總裁幼子文亨進先生就任牧師職位】


世界和平統一家庭聯合會文鮮明總裁(87歲)最小的兒子文亨進(29歲),近來開始擔任南韓青坡洞青坡教會(統一教會的發源地)的牧師一職。他畢業於美國哈佛大學哲學系,及哈佛大學的宗教研究所(主修「比較宗教學」)。在學校時,他總是剃著光頭、身著僧侶服,並曾拜訪過達賴喇嘛與曹溪宗前院長,因此,一度讓外界誤以為他改變了宗教信仰。他也曾到道教、儒教、基督教、伊斯蘭教等地,進行聖地巡禮。

文亨進先生於20歲時,接受其父親文鮮明牧師主禮的『祝福婚禮』,目前育有四男一女。他的興趣主要是茶道與書法。每天清晨兩點三十分起床禱告冥想,七年間不曾間斷,目前仍持續這樣的修行。

文亨進先生在牧會教會會員時,也是穿著僧侶服。他說:「還不習慣穿著西裝,但是頭髮已經不再維持光頭了」。他教導教會會員們通過冥想,可以修得內在的幸福與喜悅。雖然他在美國長大,對於韓文有些生疏,但溝通上沒有大問題。

目前,他從以文鮮明總裁為首的統一教會之南韓麻浦教會開始其牧會生涯,並得到相當好的評價,最近轉調至本部教會。他是文總裁的多位子女中,投身宗教牧會的代表。文總裁的三子文顯進先生,目前也是「世界和平青年聯合會」(Youth Federation for World Peace; YFWP(世界會長與「世界和平統一家庭聯合會」(Family Federation for World Peace and Unification; FFWPU)副會長;四子文國進先生則擔任南韓「統一企業集團」的理事長。統一教是與宗教、事業、政治相關聯的組織,但並無世襲制度。

文亨進先生說:「當初剃髮、身著僧侶服時,不少人都被嚇到,我自己對此也有心理準備。周邊的人也都擔心我是不是離開統一教會了。然而,我的父親看到我對宗教的熱忱,也理解我、並鼓勵我。」

他還說:「雖然我生長在統一教會,但我自己原先並沒有具備統一教會會員的認知。而是之後透過深入學習佛教等東方宗教與哲學,我才"真正"變成了統一教會的會員。」

「我了解到佛法述說的"無常","無常"是真正的智慧。我覺悟到對於"死亡"不要執著,人生最寶貴的是人際關係與家人,因此每一瞬間都要活得很精采」,文亨進先生說。

對於其他人批判統一教會的問題,他絲毫不猶豫的回答:「不管是稱我父親為異端或撒但的這群人,都無可否認地承認我父親是位愛國者!」、「以宗教的立場來看,在創始者們在世的期間內,均未有任何一個宗教建立過如此大的基台」。他強調,往後要朝著解決宗教間藩籬、世界和平的方向著手。

(中文翻譯:聆仁;編輯:Sun.Moon.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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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文來源(原文)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2131743341&code=960206

“종교 초월 평화만들기 꿈”…문선명총재 아들 형진씨 목사취임
입력: 2007년 12월 13일 17:43:34

“8년 전 바로 위 형님이 돌아가시면서 삶과 죽음에 의문을 품고 참선 등 불교에 심취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스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명상과 참선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87)의 막내아들로 최근 용산구 청파동 청파교회 당회장(목사)에 취임한 문형진씨(29). 그는 하버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삭발과 승복차림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 작고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등과의 인연으로 세간에 불교로 개종한 것처럼 알려지기도 했다. 도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 등의 종교성지를 순례하기도 했다.

종교적 입장과 관계 없이 통일교 창시자 2세, 특이한 이력 등에 대한 관심으로 12일 청파교회 사택에서 문씨를 만났다. 그는 편안한 연회색 개량한복 차림에 손에는 묵주를 하고 있었다. 스님방처럼 아무 장식없는 방 중앙에 다탁과 다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따랐다. 187㎝의 큰 키에 맑은 미소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통일교식 합동결혼으로 이른 나이인 20살에 결혼해 부인과 4남1녀를 두고 있다. 취미로 다도와 함께 서예를 즐긴다. 그는 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기도와 명상 등으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문씨는 목회 때도 같은 차림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 양복은 익숙하지 않아 잘 입지 않지만 그래도 머리는 길렀다”며 “식구(신도)들에게 명상을 통한 내적인 행복, 기쁨 같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문씨는 한국어가 서툴기는 해도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세간에서는 문씨의 당회장 취임을 두고 고령인 문총재의 후계구도와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청파교회는 문총재가 직접 목회를 했던 통일교의 상징적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근처에 통일교가 태동한 옛 본부교회와 교단의 본부가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귀국, 교단 내 마포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해 문총재를 비롯한 교단내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한다. 문총재의 7남4녀 가운데 교회의 목회자는 그가 유일하다. 현재 셋째아들 현진씨가 세계평화청년연합 세계회장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넷째아들 국진씨는 통일그룹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통일교측에서는 “통일교는 종교, 사업, 정치적인 위상이 다양하게 얽혀있는 조직”이라며 “후계구도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경계했다.

문씨는 “어린 시절 종교적인 관심과 경호문제 등으로 맘껏 나다닐 수 없는 것이 불편했다”며 “그래서 인생에 대해 고뇌하다 왕궁을 떠난 부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은 채 나타나자 모두 깜짝 놀랐어요. 저도 처음에는 파문까지 각오했습니다. 주변에서도 통일교를 떠날까봐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종교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통일교 속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스스로 통일교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없었다”며 “불교 등 동양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진정한 통일교인이 됐다”고 고백했다.

“불교에서 무상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무상은 참으로 중요한 지혜입니다. 죽음에 집착하지 않는 깨달음이 생기고 인간관계와 가족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보게 됩니다.”

문씨는 통일교에 대한 세간의 비난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는 “아버지를 애국자라고 하는 사람과 이단, 사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본다”면서 “종교학 입장에서 창시자가 살아있을 때 이렇게 큰 종교기반을 만든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우연히 동양 종교를 배우면서 또다시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통일교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초종교적인 활동을 통해 종교의 갈등과 싸움을 그치고, 세계평화를 모색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석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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